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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우 컬럼) 복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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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뉴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뿐만이 아니라 언어도 형체도 없는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사람이 살아가는 여러 영역에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전염병 예방과 퇴치 관련자들의 말을 빌리면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전염속도가 어느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빠르고 그 성격도 괴팍스러울 뿐만이 아니라 양은냄비에 죽 끓듯이 변덕스럽다고 한다. 사람도 자유롭게 만날 수도 없게 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국내 이동이나 국경을 넘나드는 것 까지도 제약을 받게 만들어 버렸으니 요사이 어떤 신형무기보다 그 위력이 대단하다. 심지어는 강대국에서 폭동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도 코로나 19가 단초가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으니 괜한 사람들끼리도 분란을 일으키고 싸움을 조장하는데도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 무역으로 경제성장이 승승장구하는 나라나 심지어는 무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까지도 무차별적으로 덩달아 “복병”을 만난 꼴이 되어 버렸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떠하여야 하며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묘연(杳然)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고 하더라도 일정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렸는가 하면  반드시, 꼭 만나야만 할 사람조차도 만남을 자제하도록 통제권까지 행사하고 있는 듯하다. 어디 그 뿐 만인가? 그 동안은 아무리 힘센 장사라고 하더라고 국경까지는 막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먹고 사는 문제는 뒤로 하고서라도 나라와 나라끼리 왕래하는 것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여 졌다. 의도적으로 사람을 기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염병 예방과 혹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창살 없는 감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 되어 버렸다. 

사람을 비롯하여 생명이 있는 모든 만물들도 저들마다 그들만의 방법대로 소통하면서 살아간다. 굳이 언어가 아니더라도 소통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크게는 손짓, 발짓, 몸짓, 표정, 혹은 그림을 그려서, 글을 써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때로는 자연이 값없이 거저 주는 색깔로도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다. 빨강은 행복, 열정, 초록색은 위로, 평화 시원함, 안전, 파랑은 고요함, 안전성, 평안 신뢰감, 검정색은 신비, 장엄함 이 외에도 소통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다양하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도 사람만이 구사하는 언어만큼 살맛나게 하지는 못하다. 언어로 소통하는 것만큼 삶을 섬세하고, 풍성하게 하며 감격하게 하여 주지는 못한다.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풍성하게 표현하면서 교감하며 소통한다는 것은 사람이기에 가능하다. 

하얀 바탕에 검은 색으로 x표시를 한 마스크가 타인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도구로서 무언의 시위용으로 사용되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와는 달리 마스크가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특징들을 하나로 통일시켜 버렸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원하여 제작한 다양한 디자인이나 색깔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까만 눈동자가 그 사람의 전부로 둔갑시켜 버렸다. 지구촌에는 대략 77억여 명이 살고 있다. 사람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창조주의 세심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누가 누군지 한 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닮은 사람은 거의 없다. 어느 한 구석이라도 그만의 특징이 있게 지음을 받은 덕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어느 누구라도 그만의 특징인 매력 포인트가 있게 마련이다. 귀여움의 상징과도 같은 오목한 보조개, 심지어는 얼굴에 난 검은 점 하나만으로도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있다. 얼굴이 둥그렇거나 갸름한 모습, 이마가 좁은 사람 넓은 사람, 청순미가 그윽한 얼굴, 다양한 피부색깔, 오뚝한 코, 요모조모 뜯어보아도 흠 잡을 곳이 없는 얼굴, 상황과는 상관없이 언제라도 항상 미소를 머금은 입, 어디 그 뿐인가? 자신의 현실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항상 웃는 얼굴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그 모습을 보는 이로 하여금 뭔가 희망을 안겨 준다. 이 모두는 사람을 식별하기 위해 필수적인 방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어여쁜 얼굴이나 미운 얼굴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그 기준도 그 사람만의 생각일 일뿐이다. 갓난 아이 때에는 생김새와는 전혀 무관하게 모두가 귀엽고 예쁘다고 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때에는 순수하고 인위적으로 꾸밈이 없기 때문일 게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아도 오밀조밀하고 예쁘게 보여 진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싱그럽게 하여 주는 보약과도 같은 효과가 있다. 누가 누군지를 알아보기 위한 각양각색의 얼굴 모습들이 이제는 둥그런 머리, 그리고 안면에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 디자인한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 그 사람의 모두를 대표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존재로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위하여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기에 누구라도 얼굴을 대면하고픈 그리움이 있게 마련이다. 보편적 기준은 아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아쉽고 그리워야 비로소 필요를 느끼게 되고 애절하게 그것을 찾게 된다. 사람에게 있어서 기쁘고 행복감을 만끽 할 때가 언제일까를 묻는다면 사람과 사람이 천차만별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어느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든지 상관없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때 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이런 저런 쏠쏠하고 쫄깃한 행복은 물 건너 간지가 쾌 오래 되었다. 다양한 색깔과 편의성을 고려하여 디자인된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것은 까만 눈에 하얀 옥구슬 같은 두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기만을 보면서 대화 하는 것으로는 뭔가 아쉽고 부족한 느낌이다. 모두가 활짝 웃는 밝은 표정을 보면서 정겨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을 것이다. 뭔가 희망을 주는 얼굴을 마주하면 인생의 시름을 잠시 내려놓고 맑고 밝은 앞날을 기약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듯 하는 밝은 표정을 모두가 사모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서로 서로 해맑고 청량감이 물씬 풍기는 그런 모습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 세상에서 어떤 것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표정을 보면서 손에 손을 맞잡고 대화하는 그 날이 온다는 기대는 이제 희망 섞인 것으로만 여겨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앞날에는 작게라마도 소망이 있다. 왜냐하면 창조 이래로 그 어떤 나쁜 상황들도 아무리 길어도 정해진 시간에 좌우되지 않고 불변의 진리인 영원에 비하면 순간이나 다름이 없는 ‘찰라’였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창조주의 형상을 닮아 지음을 받았기에 현재 우리의 현실이나 상황이 말이 아니고 꼴이 말이 아니어도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하여 분명히 기대할만 하고 믿는 구석이 있다. 항간에서는 백신개발은 언제 치료제는 언제 만들어질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다. 마치 미래에 있을 일들을 확신하며 예언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 누구도 내일에 될지 모래 아니면 언제일지 그 때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명한 사실은,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그 분께서 어딘가에 은밀하게 숨겨 놓으신 해답이 분명 있을게다. 누군가에게 허락하신 지식과 지혜를 활용하여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어 이 계기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게 하실 것이다. 왕이나 백성이 어깨동무하면서 평등하게 대우하고 대우받는 그런 세상으로 견인하는 계기가 되게 하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는 해답이 없는 문제도 있지만 그 분께만은 해답 없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되어 비 대면으로도 얼마든지 업무가 가능하고 소통방법이 다양화 되었다고 할지라도 과거와 같이 사람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국경을 훌쩍 뛰어 넘어 좋은 것들을 서로 교류하고 서로 돕고 소통하는 것이 어느 한 사람만의 간절한 소망이 아닐 것이다. 어느 곳에 머물러 있든지 모두가 동일한 마음 일게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교제하고 무엇이든지 함께 나누고 싶은 선한 마음은 누구라도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정다감한 얼굴들을 어서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을 것이다.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희망을 안겨주었던 그들 모습들이 눈에 선하고 아른아른 거릴 것이다. 정감을 나누었던 어여쁜 마음과 꽃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들이 그리울 것이다. 이전과 같이 회복되는 날이, 아니 훨씬 더 발전된 모습으로 마주하게 될 그 날이, 결국, 마침내, 드디어, 이윽고 분명 오고야 만다.

빛무리교회 담임 목사
반딧불도서관 관장
고양시 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활동교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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