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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인생칼럼)이타주의(利他主義) (1)

 [페어뉴스]= 이타주의(利他主義)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다른 사람의 복지의 증가를 행위의 목적으로 하는 생각이나 행위”이다. 비록 인간이 이 용어를 만들고 해석하여 놓은 것이기는 하지만 동물들이 살아가는 환경에도 이 내용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는 생활의 표본으로 삼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행동하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에도 여전히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고 발생되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먹고 사는 문제나 영역(領域) 다툼의 문제 때문에 동종끼리도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약자는 꼬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고, 힘센 녀석은 약자를 장악하고 우두머리 행세(行世)를 한다. 누가 다스리는 위치에 있어야 하느냐 하는 서열 문제 때문에 동종들끼리도 치열하게 아귀다툼을 한다. 피 터지는 결판을 통하여 먼저 먹어도 되는 우선순위가 정하여지기도 하고 똑같은 동물이면서도 나중에 먹어야만 하는 처량하고 비참한 처지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가 어떤지를  대충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 못지않게 동물들이 살아가는 생활 활동 영역에도 따뜻한 배려가 있고 서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간다. 공생한다는 의미이다.부족한 것을 서로 채워주기도 하고 약자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기도 한다. 병에 걸려 맥없이 죽어가는 새끼 곁에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어미도 있다. 친형제이면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매정하게 죽이는 백로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형제를 경쟁의 대상으로 삼게 하여 아예 어릴 때부터 강인하게 기르는 하이에나도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되면 어릴 때부터 아예 도태되게 만들어 버린다. 맹수들은 늘 으르렁거리면서 싸움을 하고 상처를 입히는 일은 있을지언정 동종끼리 죽이는 일은 거의 없다. 인간과 다른 면이다. 인간은 눈앞에 있는 이익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하여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혈육도 무시하여 버리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동물들이 살아가는 사회에도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못지않게 조직이 잘 짜여져 있다. 특히 성경 잠언 6장 6~8절에서 언급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세가 있는 개미가 살아가는 조직에도 인간의 사회생활과 매우 흡사한 부분이 많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니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개미들은 장래에 대하여 거창한 계획도 세워 놓지 않았어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굳이 누가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지 않아도 제 할 일은 스스로 알아서 멈추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꿀벌의 세계는 어떤가? 비지땀을 뻘뻘 흘리면서 꿀만 채집하여 오는 녀석도 있고 꿀을 채집하여 오는 녀석을 죽이면서까지 꿀을 약탈하는 도둑도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다른 벌들이 땀을 흘려 채집한 꿀을 도둑질하는 도둑을 지키는 병정벌도 있다.

한 때 소설 “가시고기”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책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때가 있었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길이 없지만 아마도 그 책의 내용에서, 가시고기의 희생적인 모습에 감동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만 하여 본다. 종족 번식을 위하여서라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내던지면서, 심지어는 뼈가 으스러지도록 희생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 반해서 일게다. 어찌 보면 인간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동물이 하는 행동에 동요되어 그 책이 인기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물들도 자신이 살아가는 생활이 팍팍하면서도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연약한 자를 돕고 보살펴 주기도 하는 녀석들도 있다. 타조는 다른 암컷이 자신의 둥지에 알을 낳게 하고 대신 알을 품어 새끼를 태어나게 하고 하늘을 날을 때까지 돌본다.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자신이 낳은 새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새끼들이 성장할 때까지 돌보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물고기도 있다. 

보편적 “이타주의”에는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분으로서 당연히 하여야 하는 일까지도 박탈당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 오게 하기 때문이다. 아무나 무조건적으로 도와주게 되면 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든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라는 성경적 교훈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모본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면 일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주 못된 근성이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다. 조금만 노력을 하거나 열심히 일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혼자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자립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로부터 도움받기를 기대하게 만들어버리게 된다. 최소한 노력한 만큼만 거두어들인다고 하더라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그리고 언제나 폭넓게 열려져 있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문제는 일한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낙심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고 매사에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그 결과로, 속고 속이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고 사회가 무질서하게 되고 어지럽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게 있어서 일이란 당연히 하여야 할 책임과 의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일하기 위하여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성경적 “이타주의”를 말하라고 한다면 이와는 차원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생존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어느 면으로든지 경제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거나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다. 연약한 자를 돕고 배려하는 것처럼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 또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이 살아가는 진정한 모습일 게다. 인류의 창시에 대하여 쓰여 졌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책에 이 내용의 핵심이 기록 보존되어 있다. 창조주께서는 미래에 일어날 이런 현상에 대하여 이미 언급하셨다. 유독 “헐벗고, 굶주리면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에게 거져 주라”는 당부의 말씀이 반복하여 등장한다. 특히 주님의 제자인 누가가 썻던 책 14장 13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잔치를 배설하려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이 행위는 비록 사람에게 행한 것이지만 주님께 꾸어주는 것이고 주님이 필요할 때에 반드시 곱으로 되돌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어떤 것에도 부족함 없이 내일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부자는 매일이 잔칫날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은 최소한 먹고 사는 것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한끼를 해결하면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잔치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다. 수족이 온전하지 않아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약자는 어느 날이고 할 것 없이 허덕허덕거리면서 인생을 원망하면서 절망가운데 평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이들을 도와야 하는 이유이다. 
 
인간도 다르지 않지만 “이타주의”의 생활을 한 동물들의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자신의 손길을 통하여 돌봄을 받은 무리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는가 하면 녀석들의 생활이 한결 여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실제로 녀석들의 모습이나 태도에서 평온함을 엿볼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동물도 태도나 모습에서 그 내면의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우리의 상식대로라면 할 수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퍼주었기 때문에 생활이 팍팍하고 형편없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의 평소의 삶이 부족함이 없었고, 어떤 일에도 모자람이 없었고, 매사가 보람 있었고, 대부분 일평생을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제정하신 “이타주의”의 풍성한 삶을 사는 자의 “삶의 원리”일 것이다. 

결국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누군가를 돕기 위해 주어진 것들임에 틀림이 없다. 물질, 재능, 심지어는 건강까지를 포함하여서이다. 이는 곧 인간을 우주의 관리자의 위치에 세워 놓으시고 그분의 뜻인 창조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창조주의 의도(意圖)하심이다. 

빛무리교회 목사
고양시 반딧불도서관 관장
고양시 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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