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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뉴스]=   “일”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무엇을 만들거나 이루기 위하여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써서 하는 인간의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 혹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그 모든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살아 있다고 하는 그 자체가 곧 일이다. 때문에 생존을 위한 모든 활동수단들이 일의 영역이다. 안정된 생활을 위하여 활동하는 것을 포함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는 모든 활동도 여기에 포함된다. 사람에게 있어서 일은 삶의 전부라고 말하여도 전혀 과언이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하지 않고서 살아가기란 어렵다기 보다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일을 통하여 경험하는 감격이나 보람을 모르고 살아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 그 자체로만 보면 사람의 생활수단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일하지 않는 삶이란 인생 그 자체가 무의미 할 수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하여야 하는 일이란 삶으로써 필수적인 생존의 수단임과 동시에 가정이나 사회의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써 주어진 책무라고 말할 수 있다.

굳이 일의 범위를 말하라면, 건강한 몸을 유지하며 평생을 살기를 원하여 하는 운동도 일이고 음식을 먹는 것도 일이다. 심지어는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하여 물을 마시는 것도 여기에서 제외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을 겸비(兼備)한 기계를 발명하여 산업현장에서 생산성 확보를 위하여 활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사람이 기계를 만들고 그 기계가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하여 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이 기계를 조작하고 작동하였지만 이제는 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인간이 원하는 바대로 세팅만 하여 놓으면 기계가 스스로 알아서 생산 상태를 파악하면서 제품을 만들어 낸다. 사람 대신 기계가 사무를 보고, 문서를 작성하고, 보초병을 대신하여 철책 선을 지키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시나리오를 구성하여 소설을 쓰기도 한다. 의사를 대신하여 사람의 몸에 어떤 병이 걸렸는지 진찰도 하고 어떤 방법으로 수술을 하여야 되는지도 판단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람보다 더 정교하게 수술도 한다. 정확도가 사람보다 월등이 높다. 눈부신 발전임에 틀림이 없다.  

기계에 의존하여 살아갈 때 편리함이나 제품을 손쉽고 빠르게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생산성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편리함만을 추구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소비를 촉진하며 생산을 장려하는 발상은 언젠가는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환경이나 일을 하므로 맛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삶의 가치를 야금야금 좀 먹게 만들게 된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하여 제품을 만들고 소비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면 결국은 그것 때문에 인간이 서야할 입지가 그만큼 좁아지게 된다. 사람이 만든 기계 덕분에 편리한 부분이나 단시간에 대량생산하는 측면으로 보면 당장 눈앞에 크나큰 발전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의 활동 영역이 줄어들게 된다거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면 삶의 가치나 의미도 연쇄반응으로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 또한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 덕분에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그 때문에 결국은 인간 스스로 설 자리를 좁아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로 인하여 사회에서는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게 되고 그 결과로 사람의 삶의 질이 현저하게 낮아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협력이나 협업의 관계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대하는 분위기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불신이 조장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성경에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라는 말씀이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이마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땀은 일의 결과물이다.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땀을 흘리게 된다. 창조주가 만물을 지으셨을 때 일을 삶의 질서로 정하여 놓으셨다. 그런 이유 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을 제외한 동물들은 살갗에 땀구멍이 없다. 먹고 사는 것을 생계수단으로써 땀을 흘려가면서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먹이활동은 일의 개념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하여 본능적으로 먹이를 찾는 활동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먹는 것에 과도하게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우리가 보기에는 돼지가 먹이를 한 없이 먹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녀석들은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알맞게 먹으면 눈앞에 아무리 맛있는 먹거리가 있어도 거기서 멈춘다. 먹는 것에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어서이다. 동물들은 생존을 위하여 피 같은 땀을 흘려야 할 이유도 없다. 주어진 여건에서 먹을 만큼만 먹으면 되게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다면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이 살아 갈 수 있게 지으신 것이다. 과학적인 단순한 논리로만 보더라도 사람은 이마나 몸에서 땀이 배출 되어야 만이 건강이 유지되게 지음을 받았다. 때문에 일을 통하여 흘리는 땀은 건강을 유지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삶에서 보람을 만들어 준다. 어떤 바람직하고 좋은 결과물을 보고 땀의 결실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사람에게 있어서 일이란 삶의 활력소와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게 있어서 일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인생을 살맛나게 살도록 만들어 준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 문명(文明)의 발전은 편리한 면도 있기는 하지만 땀을 흘리면서, 건강하게, 보람을 만들어가면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측면에서 보면, 혹은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에는, 기계에만 의존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빛무리교회 담임
고양시 반딧불도서관 관장
고양시 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 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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