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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서정우 컬럼] 봄 마중

 [페어뉴스]=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에 추운겨울이 어디론가 멀리 출행을 갔겠지 했더니 이번 주간 날씨가 영하를 오르내린다는 일기예보에 장롱 속으로 출장을 보냈던 털장갑이며 목도리를 총동원하게 만들었다. 찬바람이 금방이라도 두 뺨을 늦가을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빨간 홍시로 만들어 버리고야 말겠다는 듯이 세차게 불어온다. 그렇지 않아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것을 예방하려고 마스크까지 동원하였는데 게다가 진홍색 목도리까지 목에 질끈 동여매었으니 마치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기 위하여 완전군장을 한 것처럼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제법 두툼한 롱 패딩도 입었으니 한참을 걸어도 어지간한 추위에는 무사할 것 같다. 
 
완전무장에 버금가게 채비를 하고 나서는 이유는 다 꿍꿍이속이 있다. 오늘은 평소에 다니던 산책길을 바꾸어 걸어 볼 요량이다. 왜냐하면 작년 가을에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였던 녀석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여 볼 수 있을지 궁금해서다. 모든 산책 길손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녀석들은 나와는 각별히 절친한 친구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라도 나와 눈을 맞추면서 오직 나에게만 인사를 하는 것 같았고 다정하게 나를 맞아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세상의 풍랑에 흔들리며 기폭이 심한 내 마음의 상태와는 전혀 상관(相關)하지 않고 늘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녀석들은 내가 마음이 울적한 상태에서 만나도 손사래를 치며 마다하지도 않고 언제나 방긋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양은 냄비에 죽 끊듯이, 손바닥 뒤집듯이 변덕스럽지도 않고 언제나 그 마음이 그 마음인 녀석이 나는 정말 좋았다. 특히 작년에 큰길가 높은 담벼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산들바람에 그네를 타면서 환한 모습으로 담소를 나누던 능소화가 그립다. 녀석은 하루가 다르게 둥글납작한 손으로 담벼락을 움켜잡고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오르면서 마디마디마다 빙그레 웃는 모습으로 예쁜 꽃을 피워 길손들에게 환희를 거저 선사하여 주곤 한다. 내 마음속에 언제라도 좋은 이미지로 길이길이 여운으로 남아 있는 녀석은 어느 누구에게라도 차별하지 않고 눈을 호강시켜 주기에 충분한 예쁜 색깔의 모습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을이 되면 진한 초록빛 잎들을 한 치의 미련도 없이 훌훌 떨구어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겨울을 달갑게 맞이하였다. 그런 안타까운 까닭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녀석들의 곁을 지날 때마다 행여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염려도 하였다. 앙상한 가지로 엄동설한의 추운 겨울을 잘도 버텨내는 녀석이 얼마나 대견스럽고 신통한지, 녀석들의 곁을 지날 때마다 가끔은 두툼한 장갑으로 온기를 만들어 냉골 같은 가지에게 살며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기도 하였다. 녀석들이 꽃을 피우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는 미지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데 얼마 전 까지만 하여도 깡마르고 볼품도 없었던 앙상한 가지였는데 어느새 따스한 봄바람의 온기가 녀석들의 마음의 온도 감지기를 격동시켰나 보다. 잎이 돋아나는 둥그런 몽우리마다 초록색 물감이 가득 담겨져 있다. 툭 하고 건드리기만 하여도 금방 터져 온천지를 초록빛으로 물들일 듯하다. 여차하면 금방이라도 꽃 몽우리를 터트릴 것 같은 기세(氣勢)다. 우리는 소중한 물건을 잃게 되면 이 땅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운 것들도 쉽게 잊어버리기를 너무나도 잘도 하는데 녀석들은 얼마나 많이 정직하고 순진하고 착한지 어느 누가 잎이나 꽃을 피우는 시기를 알려 주지 않아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제 할 일을 꼬박꼬박 때를 맞추어 잘도 하고 있다. 

봄은 절망과, 좌절과, 살 소망이 없다고 신세한탄을 하는 이들에게 이겨냄과 희망과 소망과 아름다움의 상징적 의미를 우리에게 부여 하여 준다. 실제로 그렇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혹한의 강추위가 앙칼지게 휘몰아치는 겨울이 끝날 즈음 초가집 처마 밑 양지바른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사리 같은 손을 모아 입에 대하고 호호 불어가며 만들어지는 입김에 추위를 견뎌내는 꼬맹이들을 부르며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보다. ‘애들아 봄 마중’가자. ‘애들아 아지랑이 아른아른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뒷동산으로 봄 마중’가자. 

우리네 삶의 환경의 내용이 아무리 꼴이 아니고 말이 아니어도 봄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나마도 용기를 잃지 않고 오늘은 비록 이렇다 할지라도 다가오는 내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나 보다. 

빛무리교회 담임목사 
반딧불도서관 관장
고양시 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 교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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